top of page

장소를 증명해낸다는 것, 상황으로의 전개

-전리해 개인전 <두려운 밤 시간에 너는 나를>(2018)

 

                                                                                                          최윤정●독립큐레이터·미술비평

작가와 인연을 맺었던 것은 2016년 진행했던 자갈마당_기억 변신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이는 아파트 건립에 따른 재개발 여론에 힘입어 비인도적인 행태들이나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가 성찰되지 않고 있음을 직시한 것으로, 그저 환영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자갈마당’(대구 소재)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젝트(대구 여성인권센터 주관)이다. 

자갈마당이 형성되었던 일제 강점기 시기, 이곳의 이름은 ‘야에가키초(팔중원정)였다. 이는 일본 [수진전]에 실린 신화 속에 나오는 지명으로, 천조 대신(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에게 12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초고대왕이 신궁에 쳐들어가서 여왕 히미코를 굴복시키고 천조 대신의 왕비 8명을 후비로 삼아 그들을 가둔 곳이 이즈모의 ’야에가키‘라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해방 이후 이곳은 ’도원동‘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도원동은 과거 복사꽃이 만발했던 동네 혹은 성매매 여성을 ‘도화’라 일컬어 즉 ‘몸 파는 여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그러나 속칭 ‘자갈마당’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과거 대구천이 흐르는 저습지여서 그곳을 메우느라 자갈을 깔았던 것에서 유래한다. 또한, 포주들이 의도적으로 자갈을 깔아놓아 유녀들의 이탈을 막고자 자갈을 깔았다고도 전해진다. 유곽을 벗어나기 위해 밤에 몰래 도망치려 해도 자갈 밟는 소리에 의해 이내 다시 들킬 수밖에 없었다는 비극적 이야기다. 

 

작가가 자갈마당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도 2015년 대구예술발전소에 입주하면서부터였다. 대구예술발전소에 머물면서 주변 지역을 리서치하였다. 인근에는 설계도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북성로 공구상가가 분포되어 있고, 낮에는 주차장이지만 밤이 되면 불고기와 우동을 파는 가게로 변신하는 대형포장마차가 또한 가깝다. 과거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의 근대 건축물 원형을 관찰할 수 있는 옛 건물들이 상존한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신사가 있었던 달성공원이 또한 인근에 있는데, 이곳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동물원은 물론이거니와 노쇠한 말이 꽃마차를 끄는, 뭐랄까 다소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대구예술발전소의 뒤편에는 고종이 지나갔다는 길과 함께 오랜 수창초등학교가 있고, 그 앞 편에는 초등학교에서 200여 미터조차 떨어져 있지는 않은 거리에 성매매 집결지 ‘자갈마당’이 있다. 이 일대가 신사(공원), 학교, 유곽 등으로 이어지는 과거 일본 거류민 지역을 위한 계획도시로서의 보편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주마등처럼 변이되는 도시/개발 속에서 불연속적인 단층들을 만들어내면서 허물어질 듯 낡은 시간을 품고 있는 주변부로 시선을 향해 왔던 작가 전리해에게, 이곳은 강렬한 호기심을 일으키는 장소였을 것이고, 이에 그가 그냥 지나쳤을 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이윽고 그는 2015년 <태연한 기울기>를 통해 이 장소들로부터 사유한 시선들을 전달하였고, 자갈마당에 대한 첫 작업을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언니: 헛도는 삶>(2015) 와 <유리방인터뷰>(2015)가 대표적인데, <언니:헛도는 삶>은 장소에 접근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얼마나 그 주변을 배회했을지 짐작케 하는 자갈마당에 대한 이미지들이, 성행 중인 자갈마당의 밤 시간을 기록한다. 지난 100년간 도시 한 복판에 존재하나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의 이중적 잣대와 욕망의 구조 속에서 경계를 이뤄온, 유리된 섬이다, 이는 영상에서 때로는 90도로 기울어진 각도로 전이되는 장면으로 작가의 시선을 추측하게 한다. 영상 이미지와 더불어 성매매 경험당사자 여성의 한탄을 담은 듯한 판소리가 이어진다. “백 년의 역사라오, 욕이란 욕은 다 먹고... 그래도 살아남아 이곳이 지켜지는 데는 이유가 있소” 판소리의 내용은 한 성매매 당사자 여성의 목소리로 자신의 매춘을 사회의 필요악이라 하면서도, “그래, 나 창녀다, 다리 벌려 몸을 파는 년이다” 화를 내기도 하고, 종국에는 자포자기하듯 “악쓰고 몸부림쳐도...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읊조리기도 한다. 또한, 소설가와의 협업 작업인 <유리방인터뷰>(2015)는 한 기자가 집결지 폐쇄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는 한 성매매 경험당사자 여성을 인터뷰하는 설정이다. 여성은 어쩌면 성매매에 대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시각으로 그네들의 삶을 이미 편견적으로 규정해놓았을지도 모르는 청자(기자)에게, 성매매는 스스로의 선택이자 노동일 뿐, 다른 노동자들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항변한다. 성매매방지특별법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사람들의 위선을 탓하기도 하고 점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신세 한탄으로 이어지다가 이내 급작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다 들어보니까 오빠야 생각은 어떤데?” (이 작업은 전리해의 협업연작으로 1화는 성매매 당사자 여성의 이야기, 2화는 성구매자의 상황을 다룬, 2016년 발표한 <숏타임콜렉터>로 이어지기도 한다.) 

위 두 작업은 적정의 시간을 편성하여 몰입을 유도하는 서사작업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한편 성매매 경험당사자 여성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경우, 위 두 작업에 대한 불편함이 더 커질지도 모른다.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바꿔 부르거나 합법화의 단계에서 노동으로 인정을 해야 할 것인지. 왜냐하면 각 작업에 등장하는 두 성매매 경험당사자 여성들이 표면적으로 그리 주장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비단 성매매를 비롯하여 사회적인 이슈와 연관된 주제는 언제나 감상자로 하여금 윤리적인 고민에 봉착하게 만든다. 그러나 한편 그것들이 직접적인 서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봐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오히려 한쪽으로 상황을 몰아가는 ‘표면화’ 작업에 의거, 항변/화냄/합리화/자포자기/비꼼으로 연잇는, 두 화자의 일관되지 않은 감정선이 그것이다. 마치 그 표면 아래, ‘일관되지 않은’의 진실은 무엇일지 떠올리게 하는 것, 어쩌면 작가는 이 ‘상황’에 닿게끔 하는 효과적인 장치로서 이 작업을 의도했던 것이 아닐까.  

 

2016년과 2017년은 그가 성매매 당사자 여성들을 직접 마주하기도 하고, 업소의 내부를 기록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주어졌던 시간이었다. 그가 2년간 기록해온 <자갈마당>(2016-2017)은 일상이 아닌 듯이 아득하고 아련한 사연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나, 스틸라이프로서 이미지로 구현되어 있다. 오랜 건축물의 구조, 특유의 조명으로 인해 주변부와의 경계가 오묘한 밤 풍경, 꽃무늬 벽지, 침대, 몇 개의 슬리퍼, 가운 및 각종 물건이 있다. 물결치듯 똬리 튼 커튼, 긴 복도를 따라 마주 보는 방문이 즐비하다. 쌓여있는 탄산음료 위에 클래식한 여인의 나부는 여신처럼 신비로울 지경이다.  

각각의 사진들은 자갈마당의 민낯에 대해 구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성매매 당사자 여성을 구출하는 긴박한 현장이거나 의료 등 구호 활동의 현장에서 비롯된,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들을 아우르는 현장에서 촬영된 것들이다. 모호한 심경을 자아내는 장소에 대한 특유의 정적인 표현은 그의 작업 속에서 일관되게 관찰되는 부분이다. 급속한 변화 속에서 사라짐을 예측할 수 있는 장소, 장소가 품고 있는 흔적/단상들은 그만의 스틸라이프로 정지된 시간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듯 보인다. 마치 비현실적 프레임을 구축하여 감응을 편중되게 배치하려는 의도처럼. 그것은 잔잔하면서도 극적이고 안온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하다. 이러한 양가적인 정서로 말미암아 미묘한 생각이 잊히지 않는다. 그것들은 장소를 증명해낸다. 이번 개인전 <두려운 밤 시간에 너는 나를>(2018)을 통해 이은 그의 자갈마당을 에워싼 3년간의 작업은 연구자나 활동가에 의해서만 다뤄질 법한 사회적 이슈를 작가 자신의 고유한 창작 영역으로 이끌어온 과정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정장소 및 장면을 포착한 사진들을 통해 특유의 표현을 가늠하게 하였음은 물론, 대주제(자갈마당) 안에서 소주제(성매매경험당사자)로 접근하는 맥락은 서사로 잇는 협업작업을 통해 에둘러 현시하면서도 감상자를 몰입시키면서 사유지점들을 끄집어낸다. 복잡한 사유지점을 건드리는 서사와 장소를 증명해내는 이미지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전시의 호흡을 만들어내었다. 

 

작가는 3년여의 시간 동안 꾸준히 장소를 리서치하며 스스로에게 다가온 혹은 습윤 되었음 직한 내용을 수집해왔다. 무엇보다도 그 장소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면서 현재의 추이까지 관심을 잇고 있으며, 그가 그렇게 힘주어 움직였던 순간들이 나에게는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또한, 그의 창작과정 속에서 언제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소를 에워싸고 특정한 ‘상황’에 마주하고, 그로부터 주제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태도였다. 습관적으로 산책을 통해 우연한 마주침을 꾀하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장면들을 추출해내었다. 또한, 그의 관심이 묻어있는 장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발견한 장소에 대해 리서치하는 과정은 그의 강단과 호기심 가득한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득 그 과정에서 어떤 의문이 생기면 그 의문을 해결할 때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으로 상황에 몰입하는 것이다. 보자면 ‘상황’은 대면을 통해 사건이 벌어지는 현재성에 맞닿아 있는 것이고, 그에게 ‘산책’은 관찰자로서 사건/타자와의 거리를 조율하게 하는 호흡을 내어주고 있다. 그간 그가 다뤄온 주변부의 이야기들은 ‘산책’을 통해 시선의 머무름을 견지한 것이고, 지난 시간의 꾸준한 머무름으로 ‘자갈마당’이라는 장소에 개입하는 그의 실천은 ‘상황’과 창작으로 몰입한 결과로서 이번 전시를 통해 그 진정성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저 환영과도 같았던 심란하고 혼란하게 자리한 그 무엇이, 감각에 새겨질 때까지 자신을 내몰 듯이. 그리하여 흔적으로나마 자리했던 환영은 작가 전리해에 의해 ‘발견된 흔적’으로 구체화하고, 이내 상황 속에 놓여 현재를,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할 힘을 얻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