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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문재(시인)

강은 문명의 기반이기 이전에, 개발과 성장의 거점이기 이전에 생명의 젖줄이었다. 인간은 강을 먹고 마시며 진화와 진보를 거듭했다. 그런데 생명의 강이 죽어가고 있다. 생산과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산업문명이 주범이다. 아니, 풍요와 편리를 향해 질주하는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 강으로 대표되는 천지자연이 반격을 시작했다. 중금속과 방사성 물질에 이어 미세먼지가 매순간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기후변화와 함께 재난이 일상화하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합의와 결단이 시급하다. 미래가 우리에게 묻는다. 계급, 인종, 젠더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에게 캐묻고 있다. ‘인류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우리가 이 물음에 답을 구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다.

 

 

작업노트_​

보다 

강정고령보와 그 주변은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해당 장소를 단지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인식하게 한다. 인간에 의한 직접 경험 없이 자전거길, 유람선, 오리배, 바이크 등 단어나 이미지에 의한 매개를 통해 경험되는 공간이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익명의 다수에 의해 공유되는 단일한 정체성만을 경험할 뿐이다. 스펙타클한 (산업) 건축물과 자연(낙동강, 금호강, 달성습지)에 대한 폭력성과 배제성이 존재하는 양면적 공간이다.

 

듣다

두 큰 강이 만나서 빚어낸 달성습지는 얕은 강물과 드넓은 모래톱이 아름다웠던 곳으로 야생동식물들의 산란 및 서식처 역할을 하는 야생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반강제적 규율이나 지식을 내세워 공간을 지배하였고, 그 전략에 맞서 지역 시민과 환경단체들은 실천(시위, 환경보호 활동, 퍼포먼스)을 통한 공간의 전유로 대응하였다. 그들은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고 말한다. 

 

강정고령보 옆 달성습지를 여러 번 답사하며 습지의 원시성과 강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에 매료되기도 했다. 그중에 주목한 것은 폐쇄형 습지인데 이곳은 내부로 들어가는 길이 따로 없으므로 인터넷으로 검색한 짧은 텍스트나 낚시꾼 혹은 짐승들이 지나간 흔적을 힌트 삼아 들어갈 수 있다. 땅을 뒤엎어 흙을 파내고 그 위에 포장하고 건축물을 세우는 과정에 묻혀버린 수많은 생명은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이곳에 남겨진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함으로써 강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고 그 속에서 예술적 실천(기록, 변환, 이동)을 통해 귀로 듣고 냄새 맡고 깊이 생각하는 경험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달성 습지를 촬영한 사진은 강정보를 운행하는 유람선 실내 한 편에 걸어두고, 배가 반대편 선착장에 도착할 때 비로소 습지 전체를 조망하는 파노라마 작품과 마주할 수 있게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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