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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져 있던 약한 빛이 증언하는 이야기 장소의 존재 방식이나 작동방식은 역사적으로 변화한다. 경산 코발트 광산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나타난 역사로 인해 상실과 박탈, 폭력의 상처가 잔존하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코발트 광산 경산 코발트 광산은 1910년대 광업법이 제정되면서 일본이 조선광산을 장악했다. 그 당시 보국 코발트 광산이라 불리며 1930년대 이후 금, 은을 포함한 코발트광을 발견하였다. 평균 품위 3% 이상, 매장량 조선 최고 수준으로 군수품 제작에 사용되었다. 코발트 광산과 선광장은 해방 전의 일제 식민수탈현장이자 해방 직후 이념 대립과 한국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학살현장이다. 이곳은 지역과 국가 차원을 넘어서 세계 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되어 반전, 평화, 인권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여러 공동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등이 존재하여 기억을 지워버리려는 움직임과 공간마저 철거되거나 훼손되고 있다. 미래로 연결되지 못하고 과거에 멈춰있는 이곳은 오랜 시간 동안 은폐되어 왔고, 지역에 국한된 문제를 다룬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연구가 부재한 실정이다. 현재는 개인과 지역공동체의 노력으로 예술 작품, 구술자료 등으로 기록되어 함께 연대하고 또 다른 의미를 남기고 있다. 2021년 경산 코발트 광산을 방문하였을 때, 코발트 광산 입구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탑에 참배하고, 수평 2굴의 폐광 내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광산에서부터 학살까지 수십 년을 순간에 넘나드는 놀라운 경험이었고, 그 광경은 지난 시간 줄곧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 장소를 안내해준 경산 신문 최승호(유족회) 기자의 도움으로 귀중한 역사적 데이터를 직접 열람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피해자 미망인의 구술 자료와 경산지역을 배경으로 한 이동하의 소설은 70년 전 그 시절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들과 시공간적 거리감을 좁히며 잔인한 역사와 상실감을 시각적으로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공작의 세계 공작의 세계는 이동하의 소설 속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작업은 두 가정의 파멸로 인해 침묵하며 지내야 했던 한 인물이 자신의 심리가 투영된 공작의 세계(야트막한 나무상자 안에 마을과 산, 그와 부대끼던 사람들의 모습)를 만들어 바라보는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었다. 삼성역, 학교, 폐광, 마을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는 공작의 세계 모형에도 등장하고 있다. 나는 소설 속 장소인 삼성역의 플랫폼, 주인공 기억 속의 교문,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폐광을 직접 찾아가 그곳에 잔존하는 대상들을 기록하였다. 그 느낌은 소설 속 인물들의 불안을 표현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옛 모습과 많이 변해버린 코발트 광산, 마을의 골목, 학교 교정, 간이역을 숱한 경험이 묻어 있는 나의 눈으로 다시 보고자 하였다. 내 눈 속에 무언가가 끼어들었고, 또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면서 그 모든 것들 위에 미세한 감성을 가져온 것이다. 오히려 먼지 같은, 그 오랜 누적이다. 신문기자 C의 진실 규명 작업 일지 경산 신문기자이자 피해자 유족이기도 한 최승호 기자는 경산 코발트 광산 민간인학살사건에 대한 연대기적 기록을 현재도 이어가고 있다. 1950년도부터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과 진실규명을 위한 유족의 활동은 작업일지로 기록되어 수십 장에 이르는 아카이브 자료로 남아있다. 나는 이 자료를 전달받고 사건 이후 알려지지 않은 역사에 대한 시각적 연대표를 만들기로 했다. 먼저, 코발트 광산 주변에 핀 여러 들풀을 채집하고 이를 포토그램 방식으로 실루엣만 남긴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 사진 이미지 위에 연대기적 기록 텍스트 이미지를 겹쳐 시간적 층위를 만들었다. 어쩌면 자연으로 스며들었을 영혼들의 잔존을 폐광 주변부에 핀 들풀에서 찾고, 은폐되고 감춰져 있던 사실을 인화지 위에 정착시키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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