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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에서 경험하는 시간의 꼴라쥬

 

 

김인선 (윌링앤딜링 대표)

 

눈으로 인식하는 세상의 모습은 우리에게 공간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한다. 시각적 인지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의 물리적 형상이 어떠한지 머리 속에 각인시킨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난 후 다른 시간에 그 공간을 떠올릴 때는 ‘기억’이라는 방식으로 ‘과거’의 한 장면으로서 시간에 대한 보다 명확한 감각과 함께 하게 된다. 기억을 떠 올리는 그 순간은 ‘미래’의 어느 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공간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한다면 더욱 선명하게 환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이 기억의 행위는 이미 현재이거나 과거의 시점이 되어버려서 또 다른 시점에서의 활동이 되고 만다. ‘기억’이라는 행위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시점을 오가는 동안 사진은 특정 시점을 영원히 과거 속에 가두어두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전리해 작가의 풍경사진들을 들여다보면 특이하게도 각각 특정 시각에 찍은 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층위의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시간의 층위가 형성되는 과정은 작가가 정한 일정한 작업과정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마치 시간의 꼴라쥬를 경험할 수 있는 다차원적인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작가의 기억 속에서 환기되는 공간들, 즉 작가의 어릴 적 살았던 동네를 환기시키는 장소를 찾아서 그 곳을 촬영해 두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꽤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그 장소는 먼지가 쌓여 찌들어 있고 색이 바래지고 또한 그 일부가 허물어져있기도 하였다. 이러한 흔적들은 공간과 자신이 만나지 못했던 세월의 간극을 보다 강하게 일깨운다. 혹은 더 오래된 역사적인 기록이 있는 곳을 조사하고, 옛 기록을 길잡이 삼아 공간과 스토리간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기억의 장소를 찾아낸다. 공간이 자신의 기억 속에서 떠올려진 이미지와 일치하거나 어떤 역사성을 지니고 공적인 기억이 공유될 수 있는 장소라고 판단되면 이곳은 작품의 소재가 된다. 개인적인 기억의 영역이든 공적인 기억의 영역이든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 시각적으로 각인되는 공간이 시간의 흔적을 매우 강하게 내포한다는 점, 즉 ‘과거’의 시점이 시각적으로 확인되는 물리적 환경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대하는 순간,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질 종이 작업의 색상과 모양, 크기, 배치 등을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되는데, 그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전리해 작가의 사진의 소재가 되는 낡고 닳아있는 구조물, 거주지, 골목의 담 등의 공간에는 항상 작가가 직접 제작한 종이 작업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카무플라주(camouflage)처럼 언제나 그 곳에 있었던 듯 위장한 원래의 장소의 연장선으로서 만들어진 색과 얼룩 등을 지니고 교묘히 균형을 맞추며 배치된 또 다른 시간의 표식이다. 이 단계의 작업은 매우 즉흥적이다. 그리고 이 장소와 작가 사이에서 일종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구상 작업이다. 이 순간의 직관 작용은 작가가 사전 촬영하는 그 순간에 형성되며, ‘현재’ 시점으로서의 기록과 다시 떠오르게 된 과거의 기억이 교차하게 된다. 즉 작가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현재 본인이 마주한 공간에 서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직관에서 형성될 물리적 매개체를 대입해 보는 것이다. 순간으로서만 존재하는 ‘현재’의 감각은 이내 과거의 기억으로 변환되어 작업실에서 노동의 과정으로 옮겨지며, 이것은 사진 속에 언제나 등장하는 종이 작업으로 구현된다. 이 종이 작업을 만드는 과정은 세 번째 단계이다.

 

작가는 원래 전통회화인 한국화를 전공하였다. 그래서 사진 속의 매개체인 종이 작업은 작가가 다루어온 익숙한 재료이다. 물감이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종이 중에서도 한지가 좋다. 물감은 한국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색채인데 이는 여타 서양화구로서 쓰이는 물감과는 그 색감이 매우 다르다. 전통 종이의 생명력과 우러나오는 빛이 강하지 않은 한국화용 물감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연장하는 장치를 만들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종이 전체로부터 발색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물을 사용하면 종이는 그 색감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작가가 사용하는 종이는 겹겹이 쌓여서 하나의 두터운 종이가 된 한지 중에서도 꽤 무게가 나가는 종류이다. 그 종이에 색을 입히려면 그냥 붓질로는 되지도 않는다. 우선 종이를 흠뻑 적셔야 한다. 완전히 젖은 종이에 물감을 스며들게 한 후 말리고 다시 물을 흠뻑 먹인 후 물감을 또 다시 스며들게 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이때 표면에 생겨나는 얼룩은 시간성을 드러내는 자연 흔적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사용한 커피가루의 효과가 더해진 결과이다. 커피의 거무튀튀한 색과 기름진 성분은 원래의 물감의 성분을 밀어내면서 젖은 종이에 불균등한 얼룩진 무늬를 남긴다. 이러한 과정은 보통 작가에게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을 소요하게 한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물’은 오랜 된 시간의 흔적을 만들어내는데 반드시 필요한 재료이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메타포로서의 물이라는 물질은 전리해 작가가 완성해 나가는 종이 작업의 과정 속에서 특정시점이 연속적으로 쌓이도록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가 만들어낸 시간의 물리적 결과물인 이 종이 작업은 사진 속에 존재하는 공간이 지니고 있는 시간 속에 공존했던 작가의 존재감을 덧입히고 있다.

 

공간은 매개체와 함께 ‘기록’ 됨으로써 마무리 된다. 완성된 화면은 작가에게는 개인적인 기억의 한 단편이다. 또한 기억의 연장선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연출된 공간으로서 작가만의 장소로 남겨지게 된다. 이 공간은 이내 작가의 흔적도 사라지게 되는, 현재가 잠깐 존재했다가 다시 과거의 흔적을 쌓아가며 존재하게 될 혹은 결국에는 사라지게 될 과거이자 미래의 공간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공간은 사진 촬영을 통해 기록되는데 전리해 작가가 따로 사진 기술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카메라를 다루어 작업을 완성시킨다는 점은 또 한가지 중요한 특이점을 시사한다. 사진을 찍기까지 작가가 체험하고 있는 시간성과 공간감을 우리에게 온 몸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퍼포먼스적인 요소를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의 주변에 원래 존재했던 환경을 기억과 감성, 그리고 직관으로 체득하는 과정이 또한 몇 개의 단계를 거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눈으로 특정 공간을 바라보기까지 수많은 곳을 돌아다닌다. 눈으로 받아들여지는 지속적인 여러 가지 장면은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파노라마 중 한 부분이어야 한다. 동시에 적당한 싸이트를 발견하는 순간 떠오르는 직관이 바로 그 자리에 대입 된다. 머릿속에 그려진 무엇인가는 온 몸을 통해 매개체를 만들어내며 이를 공간으로 옮겨 놓는 순간 작가의 눈으로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공간은 카메라 렌즈를 통하여 작가의 눈을 통과하여 맺힌 상을 기록한다. 작가는 아무런 조명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 작가의 망막에 새겨진 아무 런 빛의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공간의 그 상태 그대로가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공간은 언제나 어둡고 쓸쓸하다. 작가는 그런 분위기에 끌린다고 말한다. 우리는 작가가 느끼는 공간의 적막감을 최종 결과물인 인화된 화면을 통해서 목격한다. 그것은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가 느닷없이 끊어지는 충격에서 오는 쓸쓸함과도 닿아 있다.

 

어느 해 작가가 머무르던 작업실 건물의 주인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작가가 기록한 사진에 등장하는 유품들은 한 개인의 기억과 행위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작가가 기록한 또 하나의 이 사진에서는 물건들을 방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인과 세입자로서의 관계로 잠시 얽혔던 역사를 작가와 공간의 직접적인 대면에 의한 시선과 함께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작가의 온몸으로 체화되고 있는 것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사진은 가장 객관적인 표현이 가능한 매체인 듯 하면서도 신기하게도 셔터를 누르는 사람에 따라 같은 장면이 색다르게 전달되곤 한다. 어느 순간의 찰나를 담기까지 사실 사진기를 쥐고 있는 이는 우선 스스로의 몸을 통해서 체험한 자신만의 감동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순간을 찾은 후에야 셔터를 누르기 때문일 것이다. 전리해 작가의 오랜 과거의 체험에서 상기되는 감성은 이를 체화시키는 과정으로서의 노동의 시간을 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작가의 감각이 새로운 환경으로 다시 확장되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각 개인의 기억과 감성역시 함께 공감하며 반추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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